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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죽문학

단편 | 돌죽문학) 슬픔을 짊어지고서_03(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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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글쓰는유동 작성일19-07-08 15:11 조회1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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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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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https://gall.dcinside.com/rlike/172662




순백의 날개를 펄럭이던 새
태양 아래서 가장 높이 날았다네

독수리 뻐꾸기 까막까치
독수리는 사냥을 위해
뻐꾸기는 지혜를 위해
까막까치는 황금을 위해
얕은 하늘에서 좁게 세상을 보았네

세쌍둥이 새들도 높이 날지 못하여
저마다의 세상에 갇히고 말았네
날개 없는 짐승들 무얼 믿고 살아가리
새하얀 새는 눈물흘렸다네


"...뭐, 대충 이런 노래가 있는데. 들어봤어?"

경비병은 천천히 계단 한 칸 한 칸을 올라가며 말했다. 흠집 하나 없이 매끄럽고 납덩어리처럼 차가운 검은 계단을 오르며, 젊은이는 경비병의 등만을 보았다. 창문이 없었기에, 그녀는 불꽃의 마법봉을 횃불 삼아 좁은 층계참을 밝히며 조심조심 올라야 했다. 이 계단을 여러 차례 오르내린듯, 경비병은 이렇다할 불빛 없이 계단을 올라갔다.

"뭔가...애가(哀歌) 같은데요. 들어본 적은 없어요."
"그렇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노래거든."

경비병은 뒤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탁한 빛깔으로 칙칙하게 물든 수정 첨탑에 들어온 이후로, 그녀는 단 한 차례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것보다, 아까는 어떻게 한거에요?"
"어떻게 했냐니?"
"여기 들어온거요. 밖에서 봤을땐 분명 아무런 틈새도 없었는데..."
"눈 깜짝할 새 벌써 들어와버렸지?"

경비병은 키득거리며 대답했다.

"다 방법이 있지."
"어떤 방법이길래 비밀문도 순간이동도 아니면서 이렇게 순식간에 탑 안으로 들어와버린건지 모르겠네요."
"알아내면 뭐하게? 연구해서 돈벌려고?"
"당연하죠."

젊은이는 아무런 흔적 없이 밀폐된 공간으로 순식간에 이동하는 기술의 현금 가치를 가늠했다. 분명 상당한 가치일텐데. 젊은이는 한때 상단에서 초고가로 취급하던 공간이동 제어 반지들을 떠올렸다-설계상의 치명적인 결함으로 지금은 판매도 생산도 중단되었지만.

"아주 떼돈을 벌텐데. 언니랑 저랑 6대 4로 나눌래요? 7대 3도 괜찮은데."
"에이, 팔 수 있는게 아냐."

경비병은 여전히 젊은이를 등진채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돈으로 되는게 아니거든."
"그럼요? 재능?"
"재능은 무슨."
"그럼요? 신앙?"

경비병은 대답하지 않고 계속 계단을 올라갔다.

그렇게 한참을 더 올랐을까, 이번에는 경비병이 젊은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있지, 그동안 우리 마을에서 대충 얼마나 벌었어?"
"음...글쎄, 번 돈은 많은데, 대상단 경합이라는게 워낙에 돈이 많이 들어야죠. 이런 식으론 참가도 어려워요."
"으음, 그렇구나."

경비병은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티없이 매끄럽고, 모난 곳 없이 부드러운 곡선. 칙칙하고 탁한 빛깔로 가득 채워진 유리와도 같은 수정 천장.

"그렇게 살면, 힘들지 않아?"
"어떤거요? 돈버는데 목숨거는 수준이 아니라, 인생 전부를 할애하는 삶? 매 순간 머리 속으로 주판 튕기는 날들?"
"그냥...그런 삶 말이야."
"뭐, 저만 그런거 아니니까요. 어느 정도는 제가 좋아하서 선택한 삶이기도 하고요."
"멋지네 그거."

경비병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린 손을 들어보였다.

"평생을 나고자란 곳이 대상단이니까 있는거지, 사실 재 능력이면 어디로든 갈 수 있거든요."
"오, 자신감 좋네?"
"당연하죠. 저한테 고자그 임 사고즈는, 대체로 미소지어주시는 분이거든요."

젊은이는 살아오면서 그녀 자신이 성취한 성과를 돌이켜보았다. 그녀 스스로가 지독히 노력한 덕도 있었지만-노력만으로는 도저히 타개할 수 없는 상황마다, 고자그의 은총이 함께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고자그께선 모범적인 상인에게 축복을 내려주시죠. 아마 거기에 저도 포함되나봐요."
"모범적인 상인이라."

경비병은 뒷짐을 지며 물었다.

"모범적인 상인은 어떤 사람이니?"
"음, 대외적인 평판을 좋게 유지하면서, 모든 잠재적 고객들로부터 신뢰받는 상인이요. 설령 자본금이 한 푼도 남김없이 털리더라도, 신용은 그렇지가 않거든요."
"그렇구나."
"그럼요. 단순히 돈만 많거나, 머리만 좋아선 지속적으로 발전 가능한 비즈니스는 불가능하거든요."

젊은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경비병은 여전히, 그녀로부터 등진 자세였긴 했지만.

"그런데."

젊은이는 모자를 고쳐쓰고, 머릿결을 넘기며 운을 뗐다.

"그건 갑자기 왜요?"

경비병은 걸음을 잠시 걸음을 멈췄고, 대답했다.

"직접 듣고 싶어서."

그리고 그녀는 다시 계단을 올랐다.


전지자의 망월대엔 아스라히 황혼이 드리워 있었다. 두 사람이 계단을 오르는 사이, 지평선은 햇빛은 찬연히 빛나는 조각조각으로 바스라뜨렸나 보다. 여전히 그녀를 등지고 선 경비병을 앞서 지나, 젊은이는 난간에 기대더니, 모자를 벗고 머릿결을 풀었다. 산뜻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그녀의 붉은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을 장난치듯 어루만지며 흐르듯 지나갔다. 경비병이 젊은이를 바라보고 있었는지, 그녀가 바라보는 노을을 같이 바라보고 있었는지는, 오직 경비병 자신만이 알 것이었다.

"멋진 풍경이지."

경비병이 말했다. 젊은이는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돌려 경비병을 향해 빙긋 미소짓더니, 다시 지평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말했다.

"언니가 전지자 맞죠?"

경비병 역시 대답하는 대신, 젊은이가 기댄 난간에 함께 기대며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드높은 망월대에서 내려다보는 마을의 모습은,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자그마한 모습이었다. 경비병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다시 내뱉었다.

"그래."
"처음에 한 말이 거짓말은 아녔네요. 아쉔자리의 사도라는거."
"엄밀히 따지면 사도는 아냐."

경비병은 부드러운 인상으로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그토록 자그마한 모습으로 보임에도, 마을에선 무언가 언어로 말할 수 없는 활기가 샘솟고 있었다. 경비병은 젊은이와 처음 만난 날부터 계속 쓰고 있던, 투박한 투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하늘에 스스로를 묶으신 분의 선택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필멸자 사이에선 드문 사람일 뿐이야."

경비병은 유수에 찬 표정으로 망월대의 난간을 내려다보았다. 칙칙하고, 탁한 빛깔의 수정 난간.

"이건 오렌지색 수정이 맞아. 저주받았을 뿐이지."
"저주요? 이 커다란 첨탑이 통째로?"

젊은이는 흠칫 놀라며 난간으로부터 뒷걸음질쳤다.

"오렌지색 수정의 용도는 단순히 머리가 맑아지고 마력이 강대해지는 게 아냐. 진짜 용도는 정신의 각성이지. 생각을 열어주는."

경비병은 젊은이를 향해 돌아보며, 양 팔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러자 그녀의 투박한 무쇠 갑옷으로부터 쇠빛의 마력이 물흐르듯 흘러내리더니, 본래의 모습-신비로운 오렌지 빛깔의 수정 갑옷이 되었다. 그리고 그 수정 갑옷에도, 마찬가지로 칙칙하고 탁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언니...그거...!"

이 마을에 온 이래 가장 크게 놀란 얼굴의 젊은이를 향해, 경비병은 멋쩍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처음부터 보여주는 게 나았으려나 몰라. 근데, 아무래도 이거 하나는 꼭 알려주고 싶어서."

경비병이 머리 위로 손을 들어올리자, 갑옷의 서늘하고 검은 기운이 일순간 일렁이더니 백색으로 물들며 사라졌다.

"저주의 본질이 뭐라고 생각해?"
"악의적인 마법의 일종 아니에요..?"
"악의적이라."

경비병은 난간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저주는 사람의 가장 강렬한 마음이 깃든 결과야. 악의적인 용도로 활용할 수 있긴 하지만, 본질은 악의가 아냐. 남을 해치려는 증오, 누군가를 엿먹이고 싶다는 욕망, 악마들의 악취미...그런건 전부 부산물에 불과해, 오래 전, 정말 까마득히 오래 전, 스스로를 저주하신 분께서 얻은 깨달음의 지극히 일부이고 파편일 뿐이지."

경비병은 오른손에 자리한, 검게 물든 반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스스로를 묶으신 분께선 우리에게 스스로를 옭아매라고 가르치시지. 많은 사람들이 그 가르침의 진정한 의미를 잊고, 저주와 힘을 맞바꾸는 정도로 여겨. 그렇지만 자기자신을 저주한다는 건, 스스로를 옭아맬 저주를 기꺼이 짊어진다는 건..."

경비병은 여전히 충격에서 헤어나오질 못한 기색의 젊은이를 바라보다니, 피식 웃으며 잠시 말을 멈추고 마월대 저편을 내다보았다. 젊은이는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어딜 보는 거에요?"
"어디라고 생각해?"
"음, 마을?"
"땡."

경비병은 평온한 미소와 함께,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을 향해 손을 뻗었다. 온 세상에 내리쬐는 황혼의 태양빛 앞에, 그녀의 손은 저물어가는 태양을 가렸고, 그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반짝였다.

"모든 것."

경비병은 숨을 깊게 들이쉬며 눈을 감았다.

...

전지자의 마을을 떠난지 벌써 두 해가 지났다.

식스파이리의 푸른 깃털이 꽃힌 선홍빛 모자 아래로, 젊은이는 붉은 머릿결을 어루만지며 앉아 있었다. 그녀 앞엔 방금 방금 막 처리를 끝낸 대상단의 1분기 장부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커피 한 잔이 있었다. 젊은이는 음각으로 장식된 커피잔을 집어들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집무실 구석의 찬장으로부터 커피콩 자루와 설탕 포대를 꺼냈다. 주전자의 물이 끓기를 기다리면서, 젊은이는 집무실에 즐비한 수많은 책장들을 훑어보다가, 씨익 웃으며 장부 한 권을 꺼내들었다.

< xxxx년 xxxx차 경합 기록 보고서 >
심사 기준 : 마이너한 상품을 메이저하게
우승 : 광전사 부락 대상 맥스웰 사의 특제 갑옷 전속 계약 체결 건

맥스웰의 특제 갑옷이라니. 트로그 신도들 머릿속은 도통 모르겠다. 젊은이는 트로그의 신도들이 자본주의의 신세계를 맞이하며 겪었을 문화 충격을 상상하며 키득거렸다. 광전사 부락 대상 맥스웰 사와의 전속 계약은 열 엔진 무기 공급 계약으로도 이어져 나름 오래가는 성공을 이루었으나, 에테르 철장 계약이 불발됨에 따라 담당자는 끝내 좌천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자리를 젊은이가 차지했고-지금 이곳 집무실도 그녀의 차지가 되었다.

역시 고자그께선 최후의 최후에 승리를 건네주시지. 그동안의 실패와 패배는 승리를 사들이기 위한 값이야-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물론, 실패와 승리 사이를 흥정하는 데 있어 그녀가 다른 이들보다 월등히 뛰어나긴 했지만-그게 중요한가? 결국 그녀는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으니 말이다.

다만, 단 한 가지. 그녀가 승리나 성취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기는 하다. 정확히는 그러한 것이 생겼다-두 해 전의 경합, 전지자의 마을에서 말이다.


"상단주님?"

말쑥한 군청색 벨벳 로브 차림의 사내가 조심스럽게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올해 경합에서 유력한 우승 후보로 손꼽히는-그러나 젊은이의 눈에는 순진무구한 햇병아리로 보이는-책 상인이었다.

"부탁하신 물건입니다."
"아, 드디어."

젊은이는 책 상인으로부터 두툼한 고서 한 권을 건네받으며 피식 웃었다.

"기특하기도 해라. 이걸 진짜로 구해올 줄은 몰랐는데."
"아는 형이 시프 무나 신도라서요. 그쪽에 부탁 좀 했죠."
"고마워. 어디보자..."

모서리가 닳아 뭉뚝해진 표지를 펼치자, 산산히 부서진 수정 제단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마치 우주의 한 조각인 것처럼 신비롭게 그려진 그 그림은 아쉔자리의 제단을 묘사한 것이었다. 젊은이는 그림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책 상인에게 물었다.

"있지, 내가 이걸 왜 그렇게 찾을까 생각해본 적 있어?"
"글쎄...아쉔자리 신도들 상대로 사업 시작하시려나? 싶었죠. 사전조사 같은 거 말입니다."
"아쉔자리 신도들 상대로 사업을 벌인다라."

젊은이는 안락의자에 기대며 눈을 감았다.

"아쉔자리 신도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 뭘까?"
"그야, 당연히 저주겠죠. 저주 해제 두루마리가 불티나게 팔릴..."
"아니, 평범한 신도들 말고. 진짜 신앙심 깊은 사람."
"아쉔자리 신도 중에 정말로 신앙심 깊은 사람이라면...그건 손해를 피하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모든 걸 내려다본다는데."
"그렇겠지?"

젊은이는 아리쏭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거봐. 내가 능력이 모자라서 실패한 게 아니래도?"
"...네?"
"아, 별 거 아냐."

젊은이는 평온한 얼굴로 다시 눈을 감았다.

"그냥 아는 언니 생각이 나서."


젊은이는 커피를 홀짝이며 고서를 한 장씩 넘겼다. 언젠가, 가장 높은 곳에서 모든 것을 내려다보던 자가 있었다. 한때 별이라 불리던 그 존재는 온 세상을 굽어살피며 빛에도 어둠에도, 은에도 살점에도 치우치지 않은 채 영원 속에서 만물을 내려다보았다. 세계는 그 자체로 생명이자 아름다움이었고-동시에 비극이자 비탄이기도 했다. 모든 것을 내려다보던 자는, 이 세상 모든 존재들의 기억을 가졌고-그 기억에 담긴 모든 희로애락의 순간을 영원토록 바라보아야 했다.

"모든 것을 안다"는 말은 단순히 초월적인 예지력을 말하는 것도, 수많은 기억들로부터 힘을 얻는다는 것도 아니다. 자기 자신을 저주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모든 것을 앎의 진정한 무게와 가치를 알게 된다. 전지자는 그것을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오렌지색 수정을 필요한 만큼 넘겨주지 못했다.

겨우 갑옷 한 벌이 고작이었지, 하며 젊은이는 집무실 한 켠에 자리잡은 오렌지색 수정 갑옷을 바라보았다. 은은한 빛무리가 감도는 수정 갑옷 하나. 전지자가 팔 수 있던 오렌지색 수정은 그것이 고작이었고, 오렌지색 수정을 가공할 방법은 알아냈으나 정작 수정을 구하지 못해 젊은이는 두 해 전 경합에서 패배했더랬다.

그러나 젊은이는 실패를 기꺼이 받아들였고, 그 무게를 기꺼이 짊어지기로 했다-그리고 이는 그녀가 끝내 상단주 자리에 오르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전지자와의 만남을 통해, 젊은이는 무엇인가를 짊어진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자기 몫의 상단을 짊어진다는 것, 자기 구역의 시장을 짊어진다는 것...전지자는 젊은이가 무엇을 짊어지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짊어지고 있는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젊은이는 고서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홀짝이며 수정 갑옷 앞에 섰다. 저주의 탁류가 사라져 본래의 오렌지빛으로 반짝이는 갑옷의 표면에, 그녀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 오렌지색 수정 갑옷의 진짜 용도, 저주의 진정한 본질. 오렌지색 수정은 기억과 감정을 담아두는 그릇이었고, 저주의 본질은 무수히 오랜 세월 세상에 쌓여온 슬픔이었다. 죽도록 차갑고, 서늘하고, 서러웠을 모든 존재들의 슬픔. 다른 존재의 행복과 온기에 안겨 위로받기를 갈망하는 원초적인 슬픔. 그것이 저주의 본질이었고, 무게였다.

아쉔자리는 그런 슬픔의 무게를 기억에 담아 저주이자 축복으로 내렸다. 자신의 신도들이 다른 존재들이 영겁의 세월동안 쌓아온 슬픔을 애도하고 위로하기를 바라며. 그러나 너무나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저주의 본질은 잊혀졌고, 오직 아쉔자리와 동등하게 모든 것을 알게 된 전지자만이 이를 깨달을 수 있었고, 이해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를 묶은 신의 처지에 공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늘에 못박힌 신과 수정 첨탑의 전지자는 온 세상의 불멸의 존재와 필멸의 존재들을 향한 애가를 부르게 되었다.

전지자가 젊은이에게 이 모든 것을 이야기하려 한 것은, 아마도 한명쯤은 이러한 뒷이야기를 이해해주고 공감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가 아니였을까. 너무나 오랜 세월 불러온 애가이기에, 그 의미가 바랜 노랫가락을 되새기며 곱씹어줄 사람이 한 명쯤 찾아와주길 바라는.


젊은이는 커피의 온기를 음미하며 눈을 지긋이 감았다. 이따금씩, 그녀는 전지자와 수정 첨탑을 떠올린다. 전지자는 온 세상의 모든 슬픔을 첨탑에 모아, 홀로 그 모든 저주를 짊어짐으로써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드려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아는 전지자조차, 그렇게 거대한 수정이 있었음에도 짊어질 수 있는 슬픔의 양은, 기껏해야 변두리 마을 하나의 주민들이 쾌활하게 살아가는 정도에 그쳤다.

그러나 그럼에도 전지자는 기꺼이 이를 받아들였다-저주를 짊어지고서. 슬픔을 짊어지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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